[역사지식] 조선 일제강점기 로드맵, 청일전쟁으로 일제침략 개시
[역사지식] 조선 일제강점기 로드맵, 청일전쟁으로 일제침략 개시 에 대해 리뷰하려고 합니다.
일본은 1868년 개시된 메이지유신 明治維新 을 통해 근대화 되면서, 유럽 및 미국의 제국주의 경쟁에 참여하면서, 한국 및 중국, 동남아에 대한 식민지 확보 전쟁을 시작합니다.
실제, 1894-95년 청일전쟁으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 군대를 제거되고, 오히려 청나라는 일본에게 대만 및 요동반도를 양도받게 되고, 조선에도 실질적인 군대는 일본군만 남게 되면서, 일제강점기가 개시됩니다.
통상,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서류적인 형식에 의한 것이고, 실제 일본군이 조선을 점령한 것은 동학혁명 및 청일전쟁이 벌어진 1894년 부터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 조선 침략의 시나리오
일본군이 조선에 진입하게 된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기를 기준으로 주요 사건의 시점, 주요 특징, 일본군의 구체적인 규모, 그리고 조선/한국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조선 말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 및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깊은 변화를 초래했고, 일본군의 무력 개입은 조선의 주권 상실과 식민지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1875년 운요호 사건
시점: 1875년 9월 20일
주요 특징: 운요호 사건은 일본 제국이 조선에 대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벌인 무력 도발 사건입니다. 일본 해군 소속의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접근하여 조선의 포대와 충돌하면서 발생했고, 운요호는 조선의 포격에 대응하여 포격을 가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은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게 됩니다.
일본군 규모: 당시 운요호에는 100명 이상의 일본 해군 병력이 탑승해 있었으며, 강화도 포대와의 교전에서 일본 해군은 16문의 포를 사용하여 조선군을 제압하게 됩니다.
영향: 운요호 사건은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적 갈등을 일으켰으며, 결국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의 체결로 이어지는데, 이 조약은 조선이 일본에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만든 불평등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에서의 상업적 이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과 조약은 조선의 자주권을 위협하는 첫걸음이 되었고,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조선에서 점점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1882년 임오군란
시점: 1882년 7월
주요 특징: 임오군란은 조선의 구식 군인들이 신식 군대와 비교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이 폭발하여 발생한 군사 반란입니다. 구식 군인들은 임금 미지급과 일본의 영향력 확대에 반발하여 서울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일본 공사관이 습격받고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군 규모: 임오군란 직후 일본은 약 1,500명의 병력을 조선에 파견하여 공사관 보호와 함께 반란 진압을 요구했습니다.
영향: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이는 일본의 내정 간섭과 경제적 침탈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조선 정부는 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청나라의 군사적 지원을 받게 되면서 청일 양국의 조선에 대한 간섭이 본격화되었습니다.
3. 1884년 갑신정변
시점: 1884년 12월 4일 - 12월 7일
주요 특징: 갑신정변은 개화파 인사들이 조선의 정치 개혁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3일간의 정변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조선의 자주 독립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장악하려 했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일본군 규모: 일본은 개화파의 정변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군 약 140명의 병력을 파견하였으나, 청나라의 군대 약 1,500명과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영향: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파 인사들은 처형되거나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조선에서의 개혁 움직임은 한동안 침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과 청나라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후 청일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됩니다. 또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이 더욱 심화되면서 외교적 자주권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4. 1894년 동학농민운동
시점: 1894년 3월 - 1895년 3월
주요 특징: 동학농민운동은 동학을 기반으로 한 농민들이 부패한 조선 정부와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여 일으킨 대규모 농민 반란입니다. 이 운동은 전봉준 등의 지도 하에 전라북도 고부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조선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며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일본군 규모: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일본군 약 8,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청나라와의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영향: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일본과 청나라 간의 청일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데, 농민군은 일본군과 조선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이 운동은 조선 내 민중의 저항 정신을 일깨우고 이후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조선 내정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게 되는데, 일본군의 경복궁 전투를 통한 경복궁 점령도 포함됩니다.
5. 1894-1895년 청일전쟁
시점: 1894년 7월 25일 - 1895년 4월 17일
주요 특징: 청일전쟁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일본과 청나라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양국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청나라군을 패배시키고 조선에서의 지배권을 확보했습니다.
일본군 규모: 전쟁 초기에 일본군은 약 20,000명을 조선에 파견하였으며,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영향: 일본의 승리로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1895)에서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청나라로부터 인정받았고,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강화되었고, 조선의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주권이 일본에 의해 점점 더 침탈당하게 됩니다.
또한, 중국은 대만 및 요동반도를 일본에게 식민지로 양도하게 됩니다.
6. 1904-1905년 러일전쟁
시점: 1904년 2월 8일 - 1905년 9월 5일
주요 특징: 러일전쟁은 조선과 만주를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불사하였고, 전쟁 초기부터 조선을 무대로 삼아 군사 작전을 펼쳤습니다.
일본군 규모: 전쟁 초기에 일본군은 약 150,000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과 만주 일대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조선 내에 일본군의 주둔은 약 60,000명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영향: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포츠머스 조약(1905) 이후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로 전환됩니다. 조선의 주권은 완전히 일본에 넘어갔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통해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하게 됩니다.
6. 1937-1945년 태평양전쟁
시점: 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2일
주요 특징: 일본이 중일전쟁(1937)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태평양전쟁이 발발되고, 조선은 이 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전쟁 자원으로 동원됩니다.
영향: 조선인들은 강제 징용, 위안부 등으로 동원되었고, 일본의 전시 체제 아래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일본이 패배할 것이 명확해지면서 조선 내 독립 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7.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시점: 1945년 7월
주요 특징: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이 모여 전후 처리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한 회담으로,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됩니다.
영향: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면서 태평양전쟁의 종결과 함께 조선의 해방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8. 1945년 8월 원자폭탄 투하
시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주요 특징: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영향: 이로 인해 일본은 항복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의 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9.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해방
시점: 1945년 8월 15일
주요 특징: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해 조선은 35년간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영향: 조선은 해방되었으나, 이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그리고 남북 분단의 시발점이 되었고, 식민지 시절의 상처와 후유증은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